22.10.28 - 22.11.02 모로코 결혼식 4

2023. 3. 5. 06:54In NL (21.10-)/일상

 

 

모로코에서의 마지막날이자, 다른 동료들이 없어 나 혼자 지낸 첫 날이 왔다. 물론 Yousra도, Yousra의 절친이자 한국에서 잠시 살아 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Carmen도 있었지만 약간 혼자 겉돌거 같은 느낌에 싸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마지막 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짐을 싸서 Chefchaouen 이라는 곳에서 1박 2일 묶기 위해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11/1 > 11/2로 넘어가는 밤 12시에 Tangier 에서 비행기를 타고 Brussels로 가는 여정이 있었기 때문에, Chefchaouen까지 쪼인하고, 거기서 저녁을 먹은 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거기다가 Brussels에서 새벽에 플릭스버스를 타고 마스트리트로 이동해서 약간... 24시간 이상 깨어있어야 하는 하드코어 스케줄이 있는 날이라 정신 똑띠 차려고 있어야 했는데 긴장감을 평소보다 높게 유지하는 건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다.

 

 

아주 재밌게도, 결혼식 일정 내내 흐리다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해가 떴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을 이제서야 만나게 되다니.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혼자 햇살을 받으며 산책도 했다. 밤 산책보다는 안전하다고 느껴지니께.

아침을 먹고는 모두들 바로 짐을 챙겨 Chefchaouen으록 가는 밴을 탔다. 

중간에 우리는 Akchour 라는 곳에 들려서 계곡을 따라 걷다가,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다리도 보고 점심도 먹었다.

 

 

근데 Akchour  바이브가 약간 한국 계곡임. 사람들이 발 담구고 있는 식당도 있고 ㅋㅋㅋㅋㅋㅋㅋ 계곡물에 음료수랑 과일 동동 띄워놓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간 정신못차렸자나..... 그리고 Akchour 에 도착해서부터 말을 트기 시작한 Vincent (Yousra 남편) 친구가 있는데 이름도 Adrian 에이드리안이라고 안읽고 - 우리 그룹 스페인애는 에이드리안이라고 부르는데 - 아드리앙이라고 한다..... ktx에서 백덤블링 하면서 봐도 프렌치 이름임ㅋㅋ 아드리앙은 너 한국인이야? 하면서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알고보니 아드리앙은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무슨 댄스경연대회에서 이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 한국에서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티켓과 상금을 땄고, 그래서 서울을 잠시 다녀왔다고 ㅋㅋㅋㅋㅋ 그래서 물꼬를 트기 시작한 대화는 계곡을 타는 도중에도, 점심을 먹는 와중에도 계속됐다. Yousra와 Vincent는 우리 사이 스파크를 감지했다고 하는데 모르겠는디욬ㅋㅋㅋㅋㅋ

어쨌든 해가 기웃해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Chefchaouen으로 이동했다. Chefchaouen은 Yousra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할머니를 떠나 보낸 곳이고, 부모님의 호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추억이 가득한 푸른 도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친구의 소망에 따라 우리는 Chefchaouen을 탐험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Chefchaouen의 old town 구시가지는 푸른 페인트로 덮여있다. Yousra 아버지가 말해준 썰에 의하면 이 곳 태양이 너무 강해서 산토리니의 흰 건물들 처럼 푸른 색으로 건물을 덮었다고 한다. 해질녘에 가서 그런지, 붉은 석양과 푸른 건물의 대조가 코 끝이 찡해질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도착하고 도시를 조금 구경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저녁을 먹으로 이동하는데 나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야해서 Yousra와 Yousra 아버지, 그리고 아드리앙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작별인사를 하던 아드리앙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억센 프랑스 억양이 가득한 영어로 내 인스타 계정을 물어왔다. 아주 솔직하겤ㅋㅋㅋㅋㅋㅋ 좀 아쉽구만 싶었다. 마지막날에서야 이야기하게 되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은 꼴까닥 잠에 들어서 기억이 별로 없다. 2시간 가량을 달려서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에 타서 잠을 자고팠는데 뒷자리 걸들의 소란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대로 계속 깬 채로 Brussels 공항에 도착했고, 버스가 파업하는 바람에 기차를 타고 북역으로 이동해 안전히 플릭스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근데 약간 대체적으로 유럽 모든 도시가 북역은 좀 험한 것 같다. 파리도 그렇고 브뤼셀도 그렇고 아주 던전같은 느낌이 있다. 

플릭스 버스를 타고서는 너무 지쳤는데 잠들면 마스트리트 역을 지나게 될까봐 계속 영화를 틀어놓고 깨어있었다. 집에 도착해선 모든 짐을 정리하고 심지어 빨래까지 돌리고서 (!?) 일하러 감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이 다 미쳤냐고 그랬다. 근데 약간 아드레날린이 펌핑된 것 처럼 잠이 안와서 7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딥슬립해서 담날 아침에 일어남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모로코 결혼식 여행이 끝났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 낭만적이고, 사랑에 취해서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나의 법적 보호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지 꽤 되었고 부모님이 이 곳에 나와 함께 평생 있어주지 못한다면 그 대상이 될 남편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결혼식이 내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아직도 위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하지만 결혼식의 정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결혼이라는 자체만 생각했지 결혼식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족들 앞에서 한 사람을 나의 평생의 반려자로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우리 부모님도 그걸 누리고 싶어하시지 않을까. 각기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자녀가 이렇게나 행복한 사랑의 결실을 이렇게 맺게 되었다고 알리고 싶어하시지 않을까. 근데 그게 내 결혼식의 이유가 되어야 하나...?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겠지?

근데 또 나는 지지리도 이상한 놈들만 모으는 재주가 있어서 너무나 사랑해서 널 내 옆에 두고 싶지만 결혼이란 제도 자체는 믿지 않아 하는 놈팽이들만 만나게 됐다. 근데 아이는 낳고 싶어함. 나와는 정반대의 의견이라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갈라지게 된 애들이 태반이기도 한데, 이 놈들한테 영향을 받은 건지, 결혼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가족의 형태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네덜란드 거주 환경) 주위에 많아서 더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니 사실 이 고민은 나중에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나타난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일수도 있다. 그 사람이라면 어떤 확신을 줄까? 

 

또 다른 물음표를 남긴 여행을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Yousra는 마스트리트에서 또 한번의 결혼식이 있을 것임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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